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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oosk 작성일18-11-18 19:44 조회51회 댓글7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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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추에 함께 한,

공부모임 후기를 남겨주세요. 깜냥껏, 무엇이든, 자유롭게.

(기한: 11월 28일까지)

 

 

댓글목록

수경님의 댓글

수경 작성일

사진은 오늘 갔던 창덕궁의 어딘가입니다. 참 좋더군요.

수경님의 댓글

수경 작성일

재미와 가독성은 전작에 비해 덜하지만 생각거리는 풍성하게 제공한다. 누가 21가지 키워드로 우리 시대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들을 논할 수 있겠는가(시도할 수 있겠는가). 시도했다 해도 공감과 공론을 형성할 수 있겠는가. 일 년에 두 달, 하루 2시간씩 명상을 한다고 하니, 그의 재능은 분명 지능과 의식이 결합된 결과물일 것이다. 비움이 만들어내는 채움이요 명상이 만들어내는 정신근력의 생산물! 제도와 공동체 사이를 오가며 시간만 보냈다. 다시 세속주의와 명상 사이를 생각하다 말기로 한다. 지반이 튼실하지 않은 지붕, 그 지붕만 좇던 격이랄까. 자신의 그늘을 직시할 수 있었던, 그것도 젊은 시절에 무엇보다 오래 지속토록, 그에게 찬사를 보낸다. 타인의 재능을 자신과 비교하는 일은 대체로 누추하지만, 만추여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1년 중 가장 좋은 계절이 간다. 

“자기 몸 안에서 편안함을 느끼지 못하면 세계에서도 결코 평안함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143쪽).”
“개인은 자기 가족과 이웃, 직업과 국가에 동시에 충성할 수 있고, 그래야만 한다(194쪽).”
“인간의 어리석음을 치유하는 한 가지 해법이 있다면 그것은 겸허함이다(270).”

myo님의 댓글

myo 작성일

이래저래 정신이 없었네요. 이미 늦었지만, 주말까지 꼭 올리겠습니다!^^;;

수경님의 댓글

수경 댓글의 댓글 작성일

그 언젠가의 나 같기도 하고,
약속강박인지 숙제압박인지.. 크크

myo님의 댓글

myo 댓글의 댓글 작성일

강박-압박이면 어쨋거나 시간에는 맞췄을텐데 ㅋㅋ 이제 후기를 안쓰면 뭔가 허전한.. 습관일까요? 허허

수경님의 댓글

수경 댓글의 댓글 작성일

오~ 제2의 천성!
아직 원고를 한줄도 못썼다는;; 나, 뭐하나 몰라요.

myo님의 댓글

myo 작성일

인간은 근미래에 닥칠 거대한 위기를 돌파할 능력이 있을까? 과거(<사피엔스>)와 미래(<호모 데우스)>를 둘러본 후 유발 하라리는 현재가 인간에게 던지는 문제에 집중한다. 인간의 필요와 편리에 의해 만들어진 정보기술과 생명기술은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고, 가장 중요한 가치인 자유(빅데이터의 디지털 독재)와 평등(기술격차로 인한 근원적 불평등)을 근본적으로 위협하게 되었다. 이제 ‘새로운 무용계급’으로 내몰릴 인간들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위기를 타개할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이제 대중은 자신이 사회와 무관해질까봐 두려워한다. 그래서 너무 늦기 전에 자신에게 남은 정치권력을 사용하는데 필사적이다.”(29쪽) 그렇게 필사적으로 사용된 정치권력은 브렉시트와 트럼프로 귀결되었다.

항상 그렇듯 위험의 씨앗은 새로운 기술이 아니라 인간에게 있다. ‘탈진실의 시대’는 문제지만, 애초에 인간이 ‘탈진실의 종(種)’(350쪽)이란 사실을 먼저 인정할 필요가 있다. “인간은 진실보다 힘을 선호한다. 세계를 이해하려고 애쓰기보다 통제하려는 데 훨씬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인다. 세계를 이해하려고 애쓰는 것도, 그러면 통제하기가 쉬워질 거라는 기대 때문이다.”(364쪽)
이 복잡한 세계를 통제하고 다시 한번 대규모의 협력을 이끌어내기 위해 인간종은 ‘자유주의’를 대체하거나 업그레이드할만한 새로운 이야기가 필요하다. ‘핵전쟁, 기후변화, 기술적 파괴’라는 인류 공동의 적은 새로운 공동의 정체성으로 이어질 것인가? 나는 이 모든 변화에 무관하거나 무용하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었지만, 새로운 이야기는 누군가가 ‘믿어줘야’ 공동의 이야기가 된다. 나는 어떤 이야기를 믿을 것인가?

결국은 ‘나’로 돌아온다. 인간에게는 이야기가 ‘필요’하지만 그 말은 결국 ‘인간은 이야기가 아니다’라는 말을 의미한다. 자유의지도 욕망도 실제 인간의 것은 아니지만 ‘고통’만은 유일하게 실제한다. “인류가 직면한 커다란 질문은 ‘인생의 의미는 무엇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고통에서 벗어나느냐’이다. 모든 허구적 이야기를 포기하면 이전보다 훨씬 더 명료하게 실체를 관찰할 수 있다. 자신과 세계에 관한 진실을 안다면 아무것도 당신을 비참하게 만들 수 없다. 하지만 물론 그것은 말처럼 쉽지 않은 일이다.”(463쪽)
인간종은 지금의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새로운 이야기가 필요하지만, 자각한 개인은 이야기의 허구성을 간파하여 세계의 현실을 명료하게 파악한다. 이 간극은 무엇일까? 어쩌면 유발 하라리는 부처와 같이 모든 인간이 깨달음(명료한 정신)에 이를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은 것 같다.

복잡한 세계를 헤쳐나가기 위해 인간의 정신 능력은 어느때보다 중요해지고 있고, 그에 맞춰 ‘명상’이나 ‘마인드풀니스’에 대한 관심도 점점 높아지고 있다. 명료한 정신은 모든 인간이 함께 고통에서 벗어나려는 ‘자비로운 마음’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 공부자리의 한 분은 한때 ‘아스트랄계’(?)를 경험하셨을 정도로 명상을 열심히 하셨지만, 내면의 평화만을 추구하는 것이 사회의 고통을 해소하는데 무력하다는 생각에 명상을 그만두셨다고 한다. 그 얘기를 듣고는 단순히 ‘내년에는 명상을 한번 해볼까’했던 생각을 다시 해보게 된다. 명상을 통해 얻은 ‘명료한 정신’이 개인을 넘어 사회가 더 나아지는 방향으로 확장될 수 없다면 그것은 순전히 개인의 심리적 평정을 유지하는데 그치고 말 것이다(물론 그것조차 어렵다;;). 유발 하라리는 명상을 통해 <사피엔스>와 <호모 데우스>같은 책을 쓸 수 있었다고 한다. 아직 파악되지 못한 인간종의 ‘정신’은 인류를 위한 새로운 이야기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을까. 불안정한 만큼 변화무쌍한 시대의 흐름이 흥미롭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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