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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oosk 작성일18-10-20 22:30 조회32회 댓글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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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모임 후기를 남겨주세요. 깜냥껏, 무엇이든, 자유롭게.

(기한: 시월의 마지막밤까지)

 

* 시월이 좋은 날이긴 한가 봅니다. "지금도 기억하고 ~",

"시월의 어느 멋진 날~" 멜로디로 흥얼거리게 되고,

무엇보다 일생 한번은 가보고 싶은 옥토버페스트도 있고... 다들 잘 지내세요^^

 

댓글목록

수경님의 댓글

수경 작성일

1. 포퓰리즘은 “지금 이곳의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했다는 외침”이며 포퓰리스트들은 그 위기의 주범을 “소수특권층 혹은 엘리트”로 지목한다. 민주주의의 위기는 특정한 상황, 즉 경제위기 혹은 불평등이 심화될 때 극을 이룬다. 포퓰리즘은 소멸되거나 반복되면서 “정치 변화의 기폭제”가 된다. 위기를 알려주고 위기에 등장하지만 미래에 대한 청사진이 없다는 강력한 반증하기도 한다. 자유주의의 역사와 궤를 같이 하는 측면도 생각해볼만하다.

2. 포퓰리즘이나 포퓰리스트에 긍정성도 분명하다. 하지만 내게는 부족성이나 반지성주의 같은 부정성이 더 많이 감지하기도 한다. 사피엔스의 역사가 진화의 역사이기도 하지만 ‘부족성’은 이래저래 지울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포퓰리스트들에게 보이는 ‘우리편주의’는 부족성만을 강화시킨다. 부족성은 반지성주의를 촉발한다. 진실(사실)은 온데간데없이 선택적 정의만 외쳐댄다. 물론 그들은 ‘선택적’이란 사실도 잊었다. 난데없이 내가 겪고 있는 포퓰리스트들의 싸움은 중2들의 싸움쯤은 되리라 믿었건만 실상은 초2라고 해도 민망한 수준이다.

3. 전지구적 자유주의의 득세는 민족주의의 득세도 함께 가져왔다. 샌더스를 지지했던 일부가 이제는 트럼프를 지지한다고 외신이 전한다. 일부? 어느 정도일까. 어쨌건 우와 좌의 포퓰리즘은 상통(相通)한다. 그 점이 의심스럽다. 하지만 나의 되지도 않은 예측으로는 현 수준에서 포퓰리즘이 한국의 정치운동이 되기는 쉽지 않다. 한편에서는 태극기부대마저 포용해야 한다니 말해 무엇하랴만. 구경꾼의 입장에선 재미난 일이다. 정치세력이 되지 않는다는 전망 아래에서만 재미난 구경꾼일 수 있다.

4. 하라리는 무관함(irrelevance)을 포퓰리즘과 연계해서 예측한다. “이제 대중은 자신이 사회와 무관해질까봐 두려워한다. 그래서 너무 늦기 전에 자신에게 남은 정치권력을 사용하는 데 필사적이다. 브렉시트와 트럼프의 부상은 전통적인 사회주의 혁명과는 반대되는 궤도의 사례를 보여준 것일 수 있다. 러시아, 중국, 쿠바에서 혁명을 일으킨 것은 경제에서는 핵심적이었으나 정치권력은 누리지 못한 사람들이었던 반면, 2016년 트럼프와 브렉시트를 지지한 것은 아직 정치권력은 누리고 있지만 자신의 경제 가치를 잃는 것이 두려웠던 많은 사람들이었다. 아마도 21세기 포퓰리즘 반란은 사람들을 착취하는 경제 엘리트가 아니라 더 이상 사람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경제 엘리트에 막서는 구도로 전개될 것이다. 이는 지는 싸움이 될 가능성이 높다. 착취에 반대하는 것보다 사회와 무관해지는 것에 맞서 투쟁하기가 훨씬 힘들기 때문이다.”(유발 하라리,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안, 29쪽) 이제 우리는 무관함과 싸워야 하는 것이다. 이상한(!) 곳에서 쓸모를 발견한 무용한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고, 사회가 치러야 하는 인정투쟁의 비용은 크다.

myo님의 댓글

myo 작성일

선거전이 한창일 때 ‘포퓰리즘’이라는 말이 범람하던 시기가 있었다. 주로 상대편의 복지정책을 깎아내리기 위한 수사적 표현으로 사용되거나, 대중에게 인기가 많은 정치인을 대중선동가로 프레임 짓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었다고 기억한다. 이와 같이 ‘포퓰리즘’이라는 용어가 수사적으로 이용될 수 있는 것은 ‘포퓰리스트로 불리는 사람, 운동, 정당을 배타적으로 정의할 만한 일련의 특성이 없다’(21쪽)고 한 저자의 말처럼 ‘포퓰리즘’을 좌·우 정당이나 정치적 신념과 같은 것으로 뚜렷하게 정의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 대신 몇 가지 특징을 찾아낼 수는 있다. 가장 뚜렷한 것은 ‘우리(국민)와 그들(기득권, 엘리트)’이라는 대립각을 세우는 것이다. 즉 그들은 자신들의 정치를 ‘국민을 도외시하는 사안과 요구에 기반을 둔 기득권층에 맞서는 국민의 투쟁’이라고 규정한다.(35쪽) 그들은 항상 다수 국민의 뜻을 스스로가 대표하고 있다고 말하며 국민과 직접 소통하는 것을 중요시한다. 어떤 때는 스스로를 ‘국민의 하인’(72쪽)으로 표현하기도 하고, 기존의 기득권층이 받아들일 리 없는 비현실적인 정책을 주장하며 그들과 다수 국민의 경계선을 더 선명하게하기도 한다. 경제적으로는 기존의 기득권층에게 유리하게 돌아가는 경제정책을 비판하며 신자유주의, 혹은 기존의 경제정책을 비판하고 복지정책을 중요시하기도 한다.

저자는 이러한 포퓰리스트의 부상이 ‘지배적인 정치 이념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수리가 필요하다는 신호이자, 표준적인 세계관이 고장 났다는 신호’(27쪽)라고 말한다. 기존의 체제로 자신들의 어려움이 해소되리라는 기대가 적어지면, 대중은 기존 체제의 외부나 가장자리에서 자신들의 불만을 이해해주고 그들의 목소리를 크게 발언해주는 누군가에게 급격하게 힘을 실어준다. 미국에서 샌더스와 트럼프(저자는 두 사람 다 포퓰리스트로 본다)의 열풍이 분 것은 그런 배경 하에서였으며, 억만장자로서 기존의 경제 시스템 내에서 성공한 트럼프 또한 미국 경제정책 특히 무역정책의 불합리함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기에 국민들의 지지를 받아 대통령에까지 당선될 수 있었을 것이다.

미국과 유럽 국가에서 힘을 얻고 있는 포퓰리즘 정치가 우리나라에서는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공부 모임에서는 경제 분배의 문제를 강조하는 좌익 포퓰리즘과 이민자나 난민, 북한과 같은 타자에 대한 불안을 강조하는 우익 포퓰리즘의 관점에서 전망한 의견도 있었고, 북한과의 평화무드로 인해 우익 포퓰리즘이 가능하지 않게 된 상황과 더불어 카리스마 있는 지도자의 부재로 국내 포퓰리즘이 정치화되기 어렵다는 의견도 있었다. 문재인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믿음이 경제침체에 대한 국민적 불만을 아직은 억누르고 있기에 당분간은 경제적인 불만이 포퓰리즘으로 정치화되지는 않을 것 같기도 하다.

문제는 오히려 포퓰리즘이 그것에 대한 정확한 이해 없이 그저 상대편을 비난할 목적으로 쓰는 정치적 수사 정도로 사용된다는 점이다. 포퓰리즘이 선동 정치로 흐를 위험성도 있지만, ‘조기경보 역할을 하는 포퓰리즘’이라는 저자의 말처럼 역사적으로 포퓰리즘은 억눌려있던 정치적 불만을 가장 먼저 감지하고 드러내는 역할을 해왔다. 그렇기에 다수 대중들에게 인기있는 정치인을 포퓰리스트로 매도할 것이 아니라 그들의 주장에서 어떤 부분을 다수 대중이 지지하고, 그 이유가 무엇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더불어 정치가 예능화되고 흥행을 위해 상대편을 깎아내리는데 혈안이 되어 이성적인 비판보다는 ‘사실과 진실을 강탈하는 느낌과 감’(수경님 별강 중)이 정치 비판의 지배적인 흐름을 이루고 있다는 지적 또한 우려되는 지점이다. 이런 정치적 토양에서는 국민의 의견을 대변한다고 말하는 진정성 있는 정치가 혹은 사기꾼 선동가가 나오더라도 옥석을 가르기가 힘들 것이다.

이번 공부 후에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라는 책을 읽게 되었다. 이 책에서 저자들은 ‘독재자가 될 가능성이 다분한 극단주의 포퓰리스트들이 어떤 조건에서 선출되는지, 선출된 독재자들이 어떻게 합법적으로 민주주의를 파괴하는지 세계 여러 나라의 사례를 통해 생생하게 보여주며’ ‘많은 나라의 민주주의가 매우 유사한 패턴으로 무너졌음을 발견’한다.
<포퓰리즘의 세계화>가 포퓰리즘을 미국의 정치사에서 시작된 하나의 정치유형으로 설명하며 그 위험성보다는 그것의 역사와 세계적인 양상에 대해 집중했다면, 이 책은 잠재적인 독재자가 될 수 있는 극단적인 포퓰리스트가 민주주의 체제 하에서 어떻게 권력을 얻게 되고, 그것이 민주주의에 어떤 위험을 초래하는지에 집중하고 있다. 다른 여러 나라의 과거 사례들도 있지만 ‘독재자를 구별하는 리트머스 테스트’라 불리는 4가지 항목에 다 해당되는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이 된 이후 미국 민주주의의 심화된 위기가 이 책의 중심축으로 설명되고 있다.
저자들은 민주주의가 단지 성문화된 헌법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규범인 상호 관용적인 태도와 제도적 자제의 문화가 뒷받침되기에 가능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미국의 양당체계의 극단적인 양극화는 상호 적대적인 태도와 ‘헌법적 강경 태도’의 악순환으로 헌법을 뒷받침해온 보이지 않는 규범을 점점 훼손시키고 있고, 그러한 상황이 독재자 성향의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게 된 하나의 원인이기도 하다.

한국 또한 비슷한 길을 걷고 있는 것은 아닐까. 박근혜의 실정으로 야당의 입지가 좁아지긴 했지만, 정당을 넘어서 지지자들과 빅스피커들이 오히려 적대와 혐오, 근거없는 음모론과 비방의 정치를 부추기고 있는 것 같다. 더 나아가 이러한 소모적인 공방이 일시적인 구경거리로 소비되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문화로 정착될 수도 있다는 것이 우려스러운 부분이다.
국민의 목소리를 대표한다며 기성 정치에 도전하는 포퓰리즘이나 포퓰리스트는 정치사에 언제나 있어왔다. 그런 이들 중 독재적 성향으로 민주주의를 위협할 포퓰리스트를 걸러내는 문지기 역할을 해야 할 정당과 언론이 소모적인 정쟁과 서로에 대한 비난, 자극적인 가짜 뉴스에 목멘다면, 포퓰리즘은 바로 그런 때 민주주의에 진정한 재앙이 되는 것은 아닐까. 민주주의를 더 위태롭게 만드는 것은 극단적인 포퓰리스트보다 서로 틀리다고 말하기위해 진실조차 외면하는 정치 문화는 아닐지 생각해보게 된다.

덧) 옥토버페스트(뭔가 했더니 역시랄까ㅎㅎ ^^), 로망이 있는 것은 좋은 것이지요~!
좋은 시월을 보내셨다니 다행입니다. 저한테는 이래저래 빡세고(?) 일찍 추워진 시월이네요.
11월은 좀더 평온한 달이 되길 바라며, 모두 건강히 지내시다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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