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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회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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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oosk 작성일18-09-24 08:34 조회48회 댓글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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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스트에 등장하는 장소에 다녀오신 분들은 짧게라도 후기 작성해주세요.

마감: 9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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學而님의 댓글

學而 작성일

이념과 전쟁에 따른 억울한 아픔들이 20세기에 많았다면, 테러와 재난사고가 빈번한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과학문명이 발달할수록 오히려 재난사고는 더 늘어날 수 있다는 울리히 벡의 경고처럼, 원인은 다르지만 비극과 고통은 21세기에도 이어지고 있다. 특히 세월호 참사는 21세기에 들어와 한국 사회가 맞은 최악의 사건이자 사후 처리에 따른 진통이 가장 큰 사건이었다. 이 사건은 사고 원인을 제대로 밝히지 않은 채 체계의 권위로 섣불리 봉합하려는 시도가 얼마나 큰 사회적 갈등을 불러일으키는지를 생생히 보여주었다. 재난사고의 원인과 책임 규명이 없는 의례는 사회적 공감대를 얻지 못하며, 그에 따라 정상적인 의례가 진행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교재에 소개된 4개의 역사적 현장 중에서, 20세기 최대 집단광기의 피해자인 유대인 학살 추모공간을 보러 베를린으로 갔다. 책에 나와 있는 것처럼 검은색 석재 묘비들이 빼곡 찬 공간을 볼 수 있었는데, 생각보다 전체 규모가 크지는 않았다. 반복 배치된 수많은 묘비는 사건의 충격성과 추모의 성격을 뚜렷하게 표현하고 있었다. 묘비 사이를 둘러보노라면 사방으로 뚫린 직선의 동선을 따라 자연스레 외부로 시선이 연결된다. 늘어선 묘지 사이로 시선이 집중되어 아득히 저 멀리 보이는 부지 밖 경관은 이곳이 확실히 죽은 자의 공간임을 인식시켜 주었다.

흥미로운 것은 추모공간 바로 옆에 있는 여러 아파트들이었다. 추모공간보다 훨씬 더 빨리 자리잡고 있었던 듯 했다. 이러한 광경이 신기했던 것은, 한국에서 세월호 추모공원 대상지를 둘러싼 주민 반대시위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추모공원 건립 공청회가 자기 지역에 설치하는 것을 반대하는 지역주민들로 난장판이 되었는데, 이곳 독일에서는 어떻게 이러한 추모공간을 조성할 수 있었을까? 추모공간을 벗어나며 돌아오는 내내 그 생각을 해 보았다.

myo님의 댓글

myo 작성일

“고통스러운 기억은 빨리 잊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저자가 시민들과 함께 남영동 대공분실을 답사하였을 때 안내해주셨던 분이 하신 말이라고 한다. 이 말은 우리 사회가 고통스러운 역사를 어떻게 대하는지 잘 표현해준다. ‘먹고 사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만들고 슬픔에 젖게 하는 과거는 오래 붙들고 있어봤자 도움이 안된다. 누구보다 빨리 떨치고 씩씩하게 일어나는 것이 잘사는 길이다.…’ 우리는 함께 고통을 나누고 슬퍼하고 애도하고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하는지 충분히 사유할 시간을 갖지 못한 채 일상으로 등 떠밀리듯 돌아온다. 여전히 슬퍼하고 있다면 그것은 ‘피곤한’ 일이 된다. ‘망각지향적’인 사회, ‘슬픔이 일상화된 사회, 슬픔이 오히려 이상하게 받아들여지는 사회’ … 교재 속 저자와 시민들은 우리 사회에 대해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나 또한 동의한다. 그리고 나또한 어느정도 그러한 사람이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고통을 기억해야 하는가? 기억하다 못해 그것을 기념하고 공동체 속에 영원히 남겨지도록 ‘건축’해야 하는가? 그 이유 중 하나를 저자는 러스킨의 입을 빌어 말한다. ‘고통을 이해하고 아름다움의 근원을 헤아려보는 것이 예술의 두 가지 목적’이라고 말이다. 고통을 기억하려고 만들어진 건축물은 기억을 형태화하고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들의 고통에 대해 숙고하게 한다. 그리고 그것에서 느껴지는 아름다움-감정적 동요의 근원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더 중요한 의미도 있다. 역사적 고통을 기억하고, 다음 세대에 전달하고, 그것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기 위해서다.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벽에는 위안부 할머니의 다음과 같은 말씀이 새겨져 있다고 한다. “한국 여성들 정신 차리시오. 이 역사를 잊으면 또 당합니다.” 그것을 본 김향미 씨는 말한다. ‘오늘 이 일을 잊으면 내일은 더 큰 비극의 괴물이 달려들겠지요.’(251쪽)

서울광장 앞 서울도서관 3층 서울기록문화관에 있는 세월호 추모공간에 방문하였다. 2014년에 서울광장의 세월호 합동분향소를 겨울을 앞두고 없애는 대신 실내로 옮긴 것이라고 한다. 추모공간은 서울기록문화관의 1/3 정도의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지만, 서울도서관의 층별 안내도에는 ‘서울기록문화관’ 밖에 표시되어 있지 않아 사전에 정보를 알고 가지 않았다면 추모공간의 존재를 알 수 없었을 것이다. 노란색으로 가득 찬 그 공간에는 시민들이 남긴 노란 리본과 포스트잇, 노란색의 종이배로 채워져 슬픔과 따뜻함이 동시에 느껴졌다. 그러나 세월호 사건이 우리 사회에 던진 파장과 상처, 고통과 아픔의 크기, 그리고 아직 현재진행형인 사건의 현실성에 비해 추모 공간은 눈에 띄지 않았고 왜소하게 느껴졌다. 다행히 세월호를 상징할 수 있는 더 대표적인 공간이 ‘416 생명안전공원’이라는 이름으로 안산시에 생긴다고 한다. 그러나 그 과정 또한 순탄치 않았던 듯하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안산 시장에 출마한 자유한국당, 바른미래당 후보들은 ‘봉안시설은 안산의 미래를 우울하게 만든다’, ‘추모공원 조성으로 안산은 영원히 세월호의 도시, 슬픔의 도시로 남게 될 것’이라는 등의 망발을 하며 반대했지만, 다행히 생명안전공원의 건립을 찬성한 민주당 후보가 시장으로 당선되었다고 한다. 많은 시민들이 기억과 추모의 공간을 공동체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이 선거로 증명되었다는 사실은, 세월호 이후의 한국 사회가 고통의 기억을 이전과는 다르게 받아들이는 방향으로 가게 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게 한다.

‘기억의 공간으로 남겨지거나 만들어진 형태는 이전까지 무지한 상태로, 모호하게, 혹은 성급하게 느끼고 경험했던 세계를 좀 더 분명하게 인식하도록 안내합니다.’(246쪽) 매순간 새로운 현실을 맞이하는 인간이기에 고통의 기억은 망각되어지고, ‘잊지 않겠습니다’라며 다짐한 순간조차 서서히 잊혀져 간다. 그러나 건축물의 형태로 보존된 기억은 망각되지 않고, 언제나 새로운 현실 속에서 공동체의 구성원들에게 과거의 기억을 되새겨준다. 무지했던 이에게는 구체적인 앎으로, 잊었던 이에게는 되새김질 되는 기억으로, 미래 세대에게는 반복되어서는 안 될 역사로. 그러한 기억의 공간을 가진 도시는 ‘우울’해지거나 ‘슬픔’의 상징이 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고통을 추모하며 어루만지는 ‘따뜻함’과, 역사적 과오가 반복되어서는 안된다는 ‘배움’을 얻게 된다. 공동체의 아픔을 어루만지는 따뜻함과 고통에서 배우는 지혜가 없다면 우리는 어째서 어울려 살아가야 하며, 어떻게 어울려 살아갈 수 있을까? 앞으로 우리 사회에 더 많은 기억의 공간이 생기기를, 그로인해 우리 사회가 조금 더 따뜻하고 조금 더 지혜로워지기를 바래본다.

수경님의 댓글

수경 작성일

서대문형무소역사관과 서소문 순교성지에 다녀왔다. 서대문형무소는 두 번째였고, 몇 번 지나가기만 했던 서소문은 처음이었다. 서울의 지리는 여전히 잘 모르겠다만, 현재 나는 서울의 서쪽에 살고 있다. 두 장소 모두 서쪽이거나 그에 가깝다. 참형되거나 효수된 곳, 죄인(!)들을 가두고 고문하던 옥(獄)이 위치했던 곳이었다. 대궐을 중심으로 보면 변방이자 죽음의 땅이었다. 지금은 땅값 비싼 곳이다. 하긴 서울 전역이 금싸라기 땅이 되었다. 형무소역사관을 걸어 나오다보면 서울을 둘러싼 아름다운 산을 가리는 곳에 고층의 브랜드 아파트가 있다. 서소문 성지는 공원이라 하기는 지나치게 도심이라 공원을 느끼기가 쉽지 않다. 한복판이니 역시 금싸라기일 것이다. 서울에 ‘임시로’ 진입한 이후, 계급이 존재함을 장벽이 존재함을 실감했다. 우리 땅 어느 곳이든 죽음이 새겨지지 않은 장소는 없을 것이다. 수 천 년을 이어온 삶이니 말이다. 하지만 현재의 서울은 어느 곳이든 죽음을 기억할 만한 곳은 없다. 우리의 지난한 역사가 ‘기억이 사라져 구멍이 숭숭한’ 모습이라면, 그 구멍을 모조리 메우고 있는 건 (투기)자본이 아닐까. 지역의 관점에서 보자면 서울은 경계다. 장소와 기억을 덮거나 훼손하는 거대한 폭력이다. 그래서 어쩌면 건축가 김수근의 얼굴과 내면을 닮았다. 심지어 그에게는 세례명까지 있다! “악마는 언제나 평범한 사람의 모습을 하고, 우리와 함께 잠을 자며 우리와 함께 밥을 먹는다(위스턴 휴 오던).”

“경계는 어떤 존재의 차단을 뜻하기보다 오히려 그 존재 혹은 다른 존재의 시작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물리적인 도시의 공간뿐만 아니라 비물리적인 시간의 공간, 즉 과거의 공간과 현재의 공간을 연결하는 존재인 것이다(159쪽).”
“하나의 강력한 기억이 나머지 기억들을 덮거나 훼손해서는 안 됩니다. 마찬가지로, 어느 특정한 종교나 단체가 약한 세력 혹은 작은 규모의 종교나 단체에 폭력적이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16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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