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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oosk 작성일18-07-23 08:51 조회63회 댓글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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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번째 주제 <기억>이 시작되었습니다.

이울공부의 마무리는 후기작성입니다. 공부에 참여하신 분은 후기를 작성해주세요.

기한은 7월 31일까지입니다.

댓글목록

學而님의 댓글

學而 작성일

노회찬 죽음의 파장이 생각 외로 거세다. 죽음의 동기가 모두 순수하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그의 죽음은 또 다른 느낌을 준다. 그는 끝내 부끄러움을 이기지 못하고 죽음을 택했다. 그러나 4,200만원이라는 정치자금을 신고하지 않은 그의 죄는 죽음의 대가로 보기에 너무 미미하다. 그보다 더한 죄책감을 느껴야 할 이들도 철면으로 방송 카메라를 응시하는 나라에서, 그의 죽음은 남아 있는 이들을 부끄럽게 만들었다.

노회찬의 죽음에서도 적잖은 이들이 죄책감을 갖는데 아우슈비츠 생존자들의 죄책감은 얼마나 컸을까? “죄책감을 느낄 수 있어야만 우리는 인간일 수 있다. 객관적으로 보아 죄가 없을 때에도 인간은 죄책감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141쪽).” 그러나 양극화와 예외 상태가 만들어내는 헐벗은 세계는 부끄러움과 죄책감을 점차 없애는 듯하다. 노회찬의 죽음을 의미 있게 만들려면 남은 이들은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증언해야 할까?

아우슈비츠는 "예외상태가 상시와 완벽하게 일치"하는 곳이었다. 양극화가 세계화되고 모든 가치가 금전으로 환원된다는 점에서 신자유주의 사회는 아우슈비츠의 또 다른 축소판이다. 그렇다면, 우리 시대의 무젤만 혹은 ‘이슬람교도는 누구일까? 이슬람교도는 “증언할 수 없는 것, 증언되지 않은 것”이며, “삶과 죽음 사이의 문턱”이자 “인간이 비인간으로 넘어가는 문턱”이다. 그들은 “인간에 대한 권력의 완승을 증거” 한다.

기억은 항상 흐릿하다. 누구나 자신의 기억을 믿지만, 사실 그 기억의 상당부분은 왜곡되었거나 과장, 축소된 결과물일 때가 많다. 정확하게 기억한다는 것은 쉽지 않으며, 결국은 언어와 이미지의 도움을 받아야만 한다. 반복이 심한 것이 역사이기에 망각은 또 다른 우를 범하는 출발점일 것이다. 아프고 쓰라린 과거일수록 잊어버리기 보다는 기억하고 기록하고 증언하는 노력이 필요한 이유이다. “개인적으로 잘 살아감이나 잘 늙어감의 문제는 기억과 밀접하다”는 수경님의 말은 이러한 의미로 이해된다. 더운 계절에 시원한 주말 오후를 만들어 준 수경님께 감사드린다.

myo님의 댓글

myo 작성일

공부자리에서 프리모 레비의 죽음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오랜 증언자의 삶의 끝에서 그가 자살한 이유는 무엇일까. 끝까지 떨쳐낼 수 없었던 죄책감과 부끄러움 때문이었을까. 며칠 후 노 의원의 부고 소식이 들려왔다. 부끄러움과 죄책감, 법정형으로도 부족하다 여겨지는 책임 때문에 그는 스스로의 삶을 마감했다. ... 어째서 그들이 죽어야했을까?

아감벤은 ‘부끄러움, 혹은 주체에 관하여’란 장에서 부끄러움과 주체화-탈주체화, 증언과의 관계에 대해 설명한다. 부끄러움은 ‘우리 존재의 무능력에 근거’를 두고 있기도 하다. ... 어째서 그들이 죽어야했는지, 이러한 이론들과 생각이 섞이다가 무기력해지는 일이 반복되었다. ‘어째서’를 이론은 설명하지 못한다. 나는 잘못된 물음을 하고 있는 것인데, 그 물음이 후기를 쓰는 오늘까지 쉽게 떨쳐지지 않는다. 왜 더 선한 사람들이 더 큰 부끄러움을 느끼며 그것을 주체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야 하는지, 부끄러움 없이 오래 ‘살아남는’ 것은 결국 아우슈비츠에서 생산해낸, 그리고 현대의 '생명 정치'가 생산해내는 ‘생존’과 같은 것인지 ...
어떤 죽음은 삶보다 더 오래 살아‘남는’다. 그것이 작은 결론이 될 수 있을까.

‘이는 인간의 삶이 모든 삶을 생존[살아남음]으로, 그리고 모든 생존을 삶으로 변하게 할 수 있는 어떤 휴지(休止)를 품고 있음을 암시한다.’(200쪽)

수경님의 댓글

수경 작성일

어제는 출장이라 종일 컴을 만날 일이 없어서, 후기기한을 넘겼네요.(순전 핑계죠;;)
블로그에 서평이나 아니면 다른 글을 써보겠다는 약속을 하면서 후기를 대신합니다.
후기를 써주는 두 분께 감사하며, 8월에도 시원하게 만나요.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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