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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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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oosk 작성일16-03-21 23:22 조회10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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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제 샤르티에․굴리엘모 카발로(편)|읽는다는 것의 역사|이종삼(역)|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2011

[둘줄평] 방대한 독서의 역사, 읽는 인간들의 역사. 독서는 미리 텍스트에 명기된 것이 아니며, 오직 독자가 거기에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에 존재한다. 텍스트의 세계와 독자의 세계, 그 조우를 고대부터 19세기까지 톺아보니 읽는 행위 자체가 중노동!

[별점] ★★☆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윌리스 반스톤|보르헤스의 말-언어의 미로 속에서, 여든의 인터뷰|서창렬(역)|마음산책|2015

[둘줄평] 작년 보르헤스의 <픽션들>을 읽었다. 바우만 할배의 여러 책에 보르헤스에 대한 극찬이 나온다. 할배는 머리가 복잡할 때 보르헤스의 소설을 읽으면 머리가 맑아진단다. 아, 사람의 뇌 속은 정말 다르군! 소설 자체가 이해불가. 그럼에도, 그래서 접어든 책. 시인이자 소설가인 그는 데리다, 푸코, 에코 같은 추종자(?)를 낳았다. 50대 중반부터 시력을 잃어간다. 작가로서 어떤 심경이었을지 생각하며 여든의 인터뷰를 읽었다. 숱한 찬사와 추종에 이유가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대신평] “보르헤스를 읽는다는 것은 모든 방향으로 뚫려 있는 정신을 만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보르헤스 본인은 정신이 늘 메말라 있었다고 말한다. 뚫려 있는 길의 끝까지 갔다는 말이 되겠다. 대화록인 이 책에서 그는 그 뚫린 길을 어떻게 만났고, 또 그 길에서 무엇을 만나고 무엇을 만들었는지 가볍고도 명석한 언어로 말한다. 그가 시력을 잃고 모든 글을 구술해서 쓰던 시절에 이루어진 이 대화는 구어가 문어의 논리성을 확보하고 문어가 구어의 구체성을 다시 회복하는 신기한 문체의 기적을 보여준다. 어느 페이지를 열어도 재미있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읽으면 더 재미있다.” 황현산 선생이 쓴 평이다. 이렇게 쓰는 것이 목표다. 신기하게도 바우만 역시 모든 방향으로 뚫려 있는 정신을 만난다는 식으로 말했다는 것.

[별점] ★★★☆

 

한나 아렌트|한나 아렌트의 말-정치적인 것에 대한 마지막 인터뷰|윤철희(역)|마음산책|2016

[둘줄평] 아렌트가 했던 4개의 인터뷰를 엮은 책. 아렌트의 책을 몇 권 읽은 사람에게는 아주 좋은 책이지만 아렌트를 모르는 사람은 읽어도 의미 파악이 쉽지는 않을 말들의 향연. “무엇이 남아 있느냐고요? 언어가 남아 있어요.” 그렇다, 이 인터뷰들에서는 분명 그녀의 숨결과 목소리가 느껴진다.

[表紙] 아렌트가 비스듬히 누운 사진이 앞표지다. 비스듬히 누운 표지는 처음이다! 세상에 예쁜 여자도 많고 지적인 여자도 숱하다. 하지만 아름답고 지성적인 여자는 오직 아렌트만의 전유물 같다. 물론 내 기준일 뿐! 거기다 이 표지의 그녀는 에로틱하다. 세상은 이처럼 불공평하다.

[별점] ★★★★☆

 

한병철|에로스의 종말|김태환(역)|문학과지성사|2015

[몇줄평] 에로스 어쩌고 하는 책은 집어들 때와 다르게 노상 어렵다. 이 책도 그렇다. 이론의 종말을 설명하는 부분은 꽤 흥미롭고, 푸코를 비판하는 부분은 동의하기 힘들다. 신자유주의를 분석했다고 그를 신자유주의 옹호자로 치부해버리는 격이랄까. 암튼 한병철의 책에 등장하는 푸코 비판에는 늘 고개가 갸우뚱할 뿐. 이건 한병철에 대한 비토인지 푸코에 대한 애호인지는 ‘아직은’ 정확히 설명할 수 없다. 비토감이 전작에 비해 크게 다가오는 이유는 그의 문장에 있다. 그동안은 내용과는 상관없이 그의 글(문장) 자체에는 군말을 할 수 없었는데, 이 책에선 그 점도 흐려진 듯하다. 그의 문장에 익숙해진 탓일까, 그가 문장을 벼리는 작업을 덜 하는 탓일까. 그도 아님 한 사람이 쓸 수 있는 결정적 문장, 가슴을 치는 문장의 총량이 정해진 탓일까.

[별점] ★★☆

 

파트릭 모디아노|어두운 상점들의 거리|김화영(역)|문학동네|2014개정판7쇄

[몇줄평] 기억 없이 10년을 살았던 한 남자가 기억의 편린(片鱗)을 좇는다. 조각들은 이어지지만 그에게 남는 것, 돌아오는 것은 없다. 내게 과거의 시간과 기억이 없다면 그건 나일까. 그럴 땐 어떻게 해야 하나. 현재를 열심히? 상당히 암울하고 이유를 찾을 수 없이 난해하지만 숨가쁘게 읽힌다. 2014년 노벨문학상을 받아서 사 둔 책이었을 것이다. 그 겨울의 책을 2016년에 2월에 읽었다.

[별점] ★★★★☆

 

존 스튜어트 밀|존 스튜어트 밀 자서전|최명관(역)|창|2010

[몇줄평] 하이트의 <바른 마음>, 누스바움의 <혐오와 수치심>은 밀의 ‘위해원칙’을 근간으로 논의를 전개한다. 특히 누스바움이 설명하는 밀의 가정사가 인상적이어서 집어든 책. 아, 그러나! 언어의 기원이 글이 아니라 말이었듯 말을 읽는 어려움 비슷한 것이 이 책의 독서를 방해한다. 19세기 지성사의 중요한 책이자 천재교육의 교본이라고 하지만, 마치 스크립투라 콘티누아(scriptura continua) 같다.

[별점] ★☆

 

김연수|사랑이라니, 선영아|문학동네|2015/초판2003

[둘줄평] 89학번이 2002년을 배경으로 쓴 이야기. 참 어여쁜 표지에 자그마한 크기의 책. 하지만 절대, 결코 ‘장편’은 아니다. 왜 우리 소설은 갈수록 얇아지지. 작가, 출판사, 독자 어느 쪽의 문제일까. 김연수의 글은 이야기(소설)보단 이론이 더 마음에 닿는다.

[별점] ★★★☆

 

라미아 카림|가난을 팝니다―가난한 여성들을 착취하는 착한 자본주의의 맨얼굴|박소현(역)|오월의봄|2015

[몇줄평] 어느 한 시절 주변 지인들에게 해외봉사가 일종의 유행이었던 시절이 있다. 그 덕에 나는 그들이 자원봉사(?)하던 몇 나라를 방문한 일이 있다. 그때 선명하진 않지만 찜찜하고 미묘하게 남았던 의문. 서방의 원조가 그들에게 원조(援助)였을까, 저들이 하는 일은 봉사(奉仕)일까. “NGO가 시골 사람들에게 새로운 욕망을 심어줘요.” 이 책은 그때 내 의문에 대한 늦은 답이었다. 하지만 믿음은 잘 깨어지지 않으려는 속성이 있다. 그 자리에 갈등이 피어오른다. 자기신념에 대한 갈등 때문에 분노하거나 절망한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간다는 노력과 신념-이를테면 NGO, 마이크로파이낸스, 유누스 등-은 무참하게 회의된다. 착한 자본주의란 허울일 뿐이며 신자유주의란 인간이 이룬 모든 제도와 프로그램, 원칙마저도 허무는 걸까. 그렇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의미 있는 연구물임에 틀림없지만, 애초에 세운 이론적 토대가 조금 더 탄탄하게 반영되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토록 고통스러운 가난의 시나리오에서 선택지는 무엇인가?”

[별점] ★★★☆

 

박건웅|짐승의 시간―김근태, 남영동 22일간의 기록|보리|2014

[몇줄평] 평범한 사람들이 조직의 일원으로 만들어내는 지옥, 끔찍한 시간을 견뎌낸 한 사람의 증언을 고스란히 그려내기에는 글보다 그림이 효과적일지 모른다. 고문도 물론 공포스럽고 힘들었겠지만, 그 사실을 다시 기억하고 증언하는 일이 더욱 고통스러울지 모를 일이다. 28년이 지난, 그것도 고문 자백의 당사자가 죽고 2년 후에야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은 무죄 판결을 받는다. 짐승의 시간을 이겨내는 방법은 기억과의 투쟁뿐이다!

[별점] ★★★★☆

 

[함께 읽은 책] 김현경의 사람, 장소, 환대|마사 누스바움의 혐오와 수치심

[感想] 다시 읽겠다고 작심했던 김현경을 누스바움과 함께 다시 읽었다. 두 권 다 어마어마한 책이다. 어라, 김현경의 첫 읽기는 얼마만큼은 오독이었다. 내가 무엇을 누군가를 떠올렸던 그를 능가하는 책이다. ‘어떤’ 인문학을 넘어설 수 있었던 것은 ‘사회학적 시야’를 확보한 탓은 아닐까. 사람을, 장소를, 감정을 말하려면 자신이 선 자리(立場)가 분명해야 한다. 두 책은 그 자리에서 빛난다. 공자는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아(朝聞道夕死可矣)”라고 했던가. 이런 저작을 쓰면 내일 죽어도 족할 터이다. 이 세상에 와 쓰레기만 남기고 가는 인생에 밥값은 넉넉히 한 셈이다.

 

[復記: 延長 혹은 연장]

1. 누스바움이 말한 ‘얼굴이 붉어지지 않을 정상의 미국인’를 생각나게 하는 “타이모크라틱한 인간형-경상도 출신이고 강남에 거주하며 한나라당에 투표하는 60대 남자(김현경, 61쪽)”. 그들의 자부심은 ‘무엇’에 대한 배제와 경멸을 내포하고 있지 않을까? 그리고 약자들이 자부심 넘치는 인간들의 분류frame를 그래도 받아들여 혐오를 대리 표출하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혐오가 담고 있는 것은 두려움이 아니라 경멸이다. 이성적인 평균인이 갖는 ‘일베들’에 대한 혐오 역시 두려움이 아니라 경멸일 것이다. 문제는? 극단적이지만, 남아공의 백인들이 흑인들의 노동력을 이용․착취하면서도 그들에게 성원권을 주지 않기 위해 ‘반투스탄’이라는 외국을 발명한 사실과 연결시키는 어떨까.

2. 여성혐오와 자리place의 문제는 차별을 은폐하는 지배 이데올로기이다. 누스바움이 말한 여성 혐오의 근원은 여성이 가진 취약성/육체성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거기에 ‘가부장주의’를 반드시 더해야 할 것 같다. “더럽다는 것은 제자리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Mary Douglas).” “성원권의 문제는 분류의 문제가 아니라 권력의 문제이며, 인식론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학의 문제이다(김현경, 74쪽).” 김현경이 맞다.

3. 모욕과 굴욕이 넘치는 시대를 산다. 혐오와 수치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감정들이다. “제도가 사람을 모욕할 때 그것은 모욕으로 인정되지 않는다(김현경, 165쪽).” 하지만 제도(법)가 사람을 모욕할 수 있도록 해서는 안 된다. 노동개혁이라는 이름 아래에 숨겨진 ‘저성과자’나 ‘쉬운 해고’ 등이 그렇다.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에게 행해지는 벌금형은 어떤가. “혐오와 수치심의 작동방식을 검토함으로써 우리는 이러한 감정이 완전히 자유롭게 행사되지 못하도록 막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누스바움, 579쪽).” “정치적 자유주의는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관념과, 호혜성과 상호 존중으로 대변되는 사회관계를 바탕으로 하는 사회 질서에 대한 사고다. 이때 상호 존중이란 인간의 삶을 구성하는 궁극적인 선에 대한 다양한 관념을 존중하는 것을 포함한다(누스바움, 57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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