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인나루

미시행(4)

페이지 정보

작성자 koosk 작성일16-11-20 00:57 조회83회 댓글0건

본문

 

<무현, 두 도시 이야기>를 어떤 모임에서 보고 백남기 선생의 노제에도 잠시 들렀다. 그 영화를 만들고 상영을 주최하고 그를 보러 모인 사람들은 어쩌면 하나로 묶일 수 있는 사람들일 것이다. 그 하나가 무얼까. 영화를 보는 내내 이곳저곳에서 흐느낌이 새어 흘렀다. 울라고 만든 영화인가. 어쨌거나 눈물은 2009년 5월의 그날들처럼 흐른다. 그 하나는 죄책감이거나 부채감 혹은 그리움은 아닐까.

 

영화는 찰스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에서 시작한다. “최선의 시간이었고, 최악의 시간이었다. 지혜의 시대였으며, 어리석음의 시대였다. 믿음의 시절이었고, 불신의 시절이었다. 빛의 계절이었고, 어둠의 계절이었다. 희망의 봄이었으며, 절망의 겨울이었다. 우리에게 모든 것이 있었고, 우리에겐 아무것도 없었다. 우리 모두 천국으로 가고 있었으며, 우리 모두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파리와 런던을 오가던 소설처럼 영화도 2000년의 부산과 2016년의 여수를 오간다. 노무현과 백무현을 오간다.

 

노무현도 백무현도 이제는 가고 없다. 2000년 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부산 ‘북강서을’의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더라면, 그랬다면 2002년의 환희가 있었을까. 그때 부산의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더라면 그는 아마 다르게 살았을지도 모르겠다. 역사에 가정은 없지만 말이다. 무엇이 그에게 우리에게 좋았었을까. 여전히 시시때때로 불려나오는 사람. NLL 파문에, 일베의 조롱에, 종편 패널들의 모든 것은 노무현 탓이라는 타령에, 송민순의 회고록에, 친노 패권으로 되살아나는 사람. 아니 그보다 그의 뒤에 재직해야 하는 대통령의 통치 행위가 바닥을 칠 때 생각나는 사람.

 

그래서 이런 생각을 종종 한다. 그렇게라도 스스로 정리하고 떠나서 다행인가. 스스로 신화가 되어 다행? 나는 그 분이 너무 일찍 온 지도자이거나 시대와 맞지 않았던 지도자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대한민국은 그런 지도자를 가질 자격이 없었던 사회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어떤 의미로든 앞으로도 우리는 그런 유형의 지도자는 만나기 힘들 것이다. 너무 일찍 오고, ‘너무 늦게 놀러가는’ 것. 어긋남은 늘 비극적이고 어쩌면 그 사이에서 무언가를 배울 수도 있을 것이다. 배움은 때로 아프다.

 

* 영화적으로는 ‘비추’다. 그렇더라도 볼 사람은 볼 것이므로. 문득 만덕산을 운운하며 내려와서 ‘두 여인의 게이트’ 때문에 존재감 없이 (쫄)망해버린 한 정치인을 생각한다. 그 사람은 대중에겐 인기가 없지만 오피니언 리더에겐 소구력이 있었던 모양이다. 나는 그 사람이나 박근혜 류의 정치인 반대편에 노무현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를 보면 어떤 부류의 사람들이 왜 그토록 노무현을 싫어했는지를 알 수 있다. 노무현 덕에, 아니 두 여인의 게이트 덕에 불티나게 팔린다는 대통령의 말하기와 글쓰기도 어떤 부류의 사람들이 노무현을 싫어하는 이유를 방증한다. 어떤 부류는 싫어하고 그래서 또 다른 사람들에겐 신화가 된다. 그리고 박정희 신화가 딸에 의해 균열을 보이는 오늘, 노무현 신화도 언젠가는 소멸하리라는 생각을 한다.

 

 

** 이건 지난 5일, 서울행을 마치고 돌아와 썼던 글이다. 오늘 다시 촛불집회를 다녀오니 어떤 작자의 미친 소리가 인터넷을 달구고 있다. "노무현도 삼성에서 8000억을 걷고, MB는 미소재단에서 2조원을 걷었는데, 기술이 좋아 안 걸렸단다." ‘박사모’ 집회에서의 발언이라니! 내가 왜 이런 작자들 개소리까지 전해 들으며 이 나라에 살아야 하나. 그냥 요양원가시라, 제발! (하느님이 보우하시든 태자마마의 기운이든 제발 한국인의 평균수명만은 1990년에서 더 이상 늘어나지 않게 해주시길 비나이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게시물 검색